교황 장례미사 엄수…경건한 박수로 25만 명이 마지막 길 배웅
트럼프·젤렌스키 등 세계 정상들 한 자리에…짧은 회담도 해
"이민자에 벽 세우지 말고 다리를"…트럼프에 일침 놓은 강론
- 강민경 기자, 이지예 객원기자, 이창규 기자, 김예슬 기자
(서울·런던=뉴스1) 강민경 이창규 김예슬 기자 이지예 객원기자 = 프란치스코 교황의 장례 미사가 26일(현지시간)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세계 정상들과 조문객 25만 명이 모인 가운데 엄수됐다.
AFP통신에 따르면 교황청은 이날 성 베드로 광장에 25만 명이 넘는 인파가 몰렸다고 발표했다.
저격수와 전투기를 배치하고 비행금지 구역을 설정하는 등 삼엄한 경비 속에 광장을 가득 메운 인파는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교황의 관이 등장하자 경건하게 박수를 보냈다.
세계 정상들과 고위 관리 등 170개국에서 온 대표단도 장례식을 지켜봤다. 이 때문에 교황의 장례식은 단순한 추모를 넘어서 세계 정상들 외교의 장으로서도 주목받았다.
프란치스코 교황과 과거 이민자 추방 문제로 충돌했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아내 멜라니아 여사와 함께 왔다. 2기 취임 후 첫 국외 방문이었다.
가톨릭 신자인 조 바이든 전 대통령도 참석했으며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과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조제프 아운 레바논 총리 등도 참석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이번 장례식 참석을 계기로 트럼프 대통령과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15분간 회동했다. 우크라이나 대통령실은 두 정상이 "생산적인 대화를 나눴다"고 밝혔다.
두 정상의 만남에는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함께했다.
장례 미사를 집전한 조반니 바티스타 레(91) 추기경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교황이 생전 가장 강조했던 메시지를 꺼내 들었다. "이민자들 앞에 벽을 세우지 말고 다리를 놓으라"는 말이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레 추기경은 이민자에 대한 배려와 전쟁의 종식, 기후 변화 대응 등 프란치스코 교황이 생전에 관심을 가지던 주제들을 하나하나 회고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트럼프가 1기 동안 이민자 추방 정책을 밀어붙일 당시 "어디에 있든 벽을 쌓는 것만 생각하고 다리를 놓는 것은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기독교인이 아니다"라며 "그것은 복음에 없는 일"이라고 일침을 가했었다.
당시 트럼프는 "종교 지도자가 한 사람의 신앙을 의심하는 건 수치스러운 일"이라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었다. 최근 교황은 트럼프 2기가 또다시 이민 단속을 강화하자 "망신스러운 일"이라고 한탄하기도 했다.
레 추기경은 교황이 생전 난민과 이민자,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교황이 셀 수 없는 노력을 기울였다고 강조했다. 그는 "교황 프란치스코는 어려움 속에서도 사람들에게 다가가며 그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소외된 이들을 위해 헌신했다"며 "그는 모든 사람에게 열린 마음을 가진 민중 속의 교황이었다"고 회고했다.
이날 강론은 수백만에 달하는 전 세계 청중이 생중계로 들었으며 국가 지도자들에게는 강력한 정치적 메시지가, 세계 가톨릭 추기경들에게는 강력한 내부적 메시지가 됐다고 로이터는 해석했다.
교황의 장례식 가운데 역사상 처음으로 중국어가 울려 퍼지기도 했다. 미얀마의 찰스 마웅 보 추기경은 중국어로 "이 자리에 모인 우리가 모두 성스러운 신비를 기념한 후 언젠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부르셔서 영광스러운 그의 왕국에 들어가게 하시기를 바란다"고 말한 것이다.
교황의 장례 미사에서 중국어가 포함된 것은 처음이다. 생전 중국 방문 의사를 밝히는 등 중국과의 관계 개선에 힘써 온 교황의 노력을 기리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장례미사 직후 교황의 시신이 잠든 관은 최종 안장지인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전(성모 대성전)으로 운구됐다.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전은 로마에 있는 4대 교황 대성전 중 하나이지만, 이곳에 안장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선종한 교황 265명 중 140명 이상이 관례대로 성베드로대성당에 묻혔지만, 산타 마리아 마조레에 묻힌 교황은 7명에 불과하다.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전은 과거부터 이민자와 가난한 이들이 거주했던 지역인 로마 에스퀼리노 언덕에 있다. 교황은 선종 전 산타 마리아 마조레와 매우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며 이곳에 안장되기를 요청해 왔다. 교황은 재임 기간 100회 이상 이곳을 방문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날 운구 행렬은 옛 교황의 길, '비아 파팔리스'(Via Papalis)를 따라 6km가량 이어졌다.
비아 파팔리스란 중세 시대 교황들이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즉위한 뒤 로마 주교좌 성당인 라테라노 대성당까지 말을 타고 이동하던 경로를 말한다. 베네치아 광장, 콜로세움 등 로마의 여러 명소를 지나친다.
교황은 지난 21일 선종했다. 향년 88세.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23일~25일 진행된 일반 조문에는 25만 명이 다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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