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테랑 경찰]"어제 쓴 피싱 수단, 오늘 안 통한다…수단 제공자까지 검거"
심무송 서울청 피싱범죄수사계장 "검거보다 수단별로 집중대응"
조직형 비대면 사기 대응 총괄할 법 체계·컨트롤타워 필요
- 박혜연 기자, 권진영 기자
(서울=뉴스1) 박혜연 권진영 기자
"작년부터 1인당 피해금액이 급증했습니다. '이런 건 당하면 안 되겠다, 나한테도 이런 게 올 수 있겠네' 생각을 가져주시면 좋겠습니다."
"대한민국은 사기 공화국" 보이스피싱이 국내에서 처음으로 신고된 것은 2006년 5월. 그로부터 약 20년이 흘렀지만 범죄는 근절되지 않고 오히려 피해는 더욱 커지고 있다.
올해 1분기(1~3월) 보이스피싱 범죄 건수는 5878건 발생해 전년 동기 대비 17.2% 늘었고, 피해액은 3116억 원으로 2.2배 늘었다. 건당 평균 피해액은 5301만 원으로 전년(2813만 원) 대비 1.9배 증가했다.
보이스피싱뿐 아니라 중고판매 사기부터 스미싱, 로맨스스캠, 리딩방·투자 사기, 쇼핑몰 리뷰 사기, 팀미션 사기에 최근 노쇼 사기에 이르기까지 온라인이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 정보통신망을 이용한 '조직형 비대면 사기'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치밀한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철저히 점조직·분업화된 범죄 수단, 가상자산을 통한 자금 세탁까지 범죄 생태계가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다.
심무송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형사기동대 피싱범죄수사계장(50·경정·경찰대 15기)은 지난 22일 서울 서대문구 소재 피싱수사계 사무실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통해 조직형 사기에 대응하기 위해 패러다임을 전환, 집중대응 전략을 도입했다고 밝혔다.
그는 "개별 신고 건에 대응하던 기존 방식으로는 이들 비대면 조직형 사기와 대적하기 어렵다"며 "4년 전부터 패러다임을 전환해 콜센터조직뿐만 아니라 다양한 범행수단을 파악해 무력화하고, 수단을 제공하는 자들을 단속·검거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청 피싱수사계는 보이스피싱에 이용되는 전화번호와 중계기, 대포통장, 대포유심, 미끼문자, 악성앱, 메신저 계정 등 각종 범행수단 정보를 매일 전국적으로 수집해 데이터베이스화하고, 분석·차단하는 한편 각 시도청에 공유한다.
피싱범죄를 당했다는 피해자들의 진술도 한데 모아 패턴과 유형을 분석하고 통신사·금융기관 등에 공유해 추가 피해 차단에 집중한다. 어떤 법인 계좌에 피해금액이 입금됐을 경우 과거엔 수사를 맡은 경찰서에서만 보는 데 그쳤다면 지금은 전국에서 데이터를 모으고 공유하며 해당 계좌와 연관된 자금 세탁조직을 찾아 나선다.
심 계장은 "날로 발달하는 IT 기술을 이용해 경찰 대응을 회피, 우회하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어 한시도 같은 자리에 머무를 수 없다"며 "다만 어제 쓴 그 수법, 오늘은 못 써먹게 한다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고 강조했다. 한 마디로 '데이터 싸움'이기 때문에 1년 365일 쉴 새 없이 대응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피싱범죄는 여러 조직이 가담하는 만큼 경찰 수사도 유기적인 협업이 필수다. IT 기술 전문성이 중요한 사이버 수사기법, 현금 수거책의 동선을 추적하고 폐쇄회로(CC)TV를 분석하는 형사 활동, 피해금 이전 과정을 추적하고 범죄수익을 측정하는 자금추적까지 수사 활동의 경계가 없다. 그래서 수사국 경제과가 맡았던 보이스피싱 범죄가 작년부터 형사국 소관으로 이전됐다.
그럼에도 피해가 계속 커지고 있는 이유는 가상자산 거래소를 통해 자금 세탁이 과거보다 훨씬 용이해졌기 때문이다. 신고 건수는 비슷하고, 검거 인원은 이전보다 훨씬 증가했지만 피해금이 빠져나가는 '파이프라인'이 너무 커져서 막기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심 계장은 "해외에서 (자금을) 받아내는 통로가 과거에는 환치기밖에 없어서 지급 정지돼 멈추는 경우가 상당히 많았지만 지금은 파이프가 너무 커져서 들어오는 족족 다 나간다"고 한숨을 쉬었다.
특히 카드나 등기우편물 배송 사고를 가장한 '기관 사칭형' 보이스피싱이 60~70대 여성 피해자들에게 잘 먹혀들었다. 가족에 대한 책임감과 준법 의식, 수사기관에 대한 신뢰가 강한 데다 압박과 위로를 번갈아 주입하며 심리적으로 흔들어놓는 범죄 수법에 취약하기 때문이다.
심 계장은 "특정인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OOO 씨 맞으시죠?'라고 접근하는 작살식 범죄로 이뤄지는데 이것은 조심할 방법이 없고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며 "사회적으로 저명하고 공직에 계신 분들도 피해를 봐서 신고하는데 '바보처럼 당했다'는 말은 안 당해봤으니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가족에게 미안한 마음에 피해자들이 마치 죄를 지은 것처럼 위축되는데 그 대신 가해자를 탓해야 한다"며 "속아서 돈을 보냈더라도 사전에 이런 범죄를 막지 못한 국가와 통신사, 은행을 탓하는 것이 맞다"고 강조했다.
법적 한계도 있다. 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 방지 및 피해금 환급에 관한 특별법(통신사기피해환급법)에 따르면 전기통신망을 이용한 사기 행위 관련 계좌에 대해 지급 정지 등 조치를 신청할 수 있지만 '재화나 용역 공급 등을 가장한 행위는 제외한다'는 단서가 붙어 있다.
같은 비대면 사기라도 보이스피싱은 적용되지만 법 해석에 따라 비상장 주식이나 가상자산 투자를 가장한 사기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볼 수도 있다.
심 계장은 "보이스피싱 피해자금이 들어온 계좌에서는 돈이 바로 빠져나가는 반면 투자사기 거래 계좌에는 돈이 들어와도 며칠간 느긋하게 있다 한꺼번에 뺀다"며 "어차피 은행에서 지급정지를 안 받아준다는 걸 조직범들도 잘 알고 있었다는 뜻"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법원은 작년 10월 25일 가상자산 사기 피해자도 '통신사기 피해'에 해당한다고 봐 지급 정지가 가능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심 계장은 "단순히 보이스피싱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이유로 대응이 달라진다는 것에 의문을 갖게 됐다"며 "비대면 사기 전체에 적용 가능한 새로운 법체계도 시급히 마련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조직형 비대면 사기에 대한 효율적 대응을 위해 경찰 내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심 계장도 "보이스피싱은 형사국이, 리딩방 사기는 수사국이 하라고 해봤자 어차피 같은 파이프로 돈이 나가는데 따로 대응하면 결국 풍선효과만 나타난다"며 "기존 수사관들에게 적절히 의무와 역할만 새로 부여해도 더 빠르고 효율적인 대응이 가능하다"고 공감했다.
다른 시도청에서도 서울청 피싱수사계와 협업해 벤치마킹을 시도하고 있다. 제대로 안착한 곳은 아직 일부에 불과하지만, 그동안 시행착오를 통해 쌓은 노하우를 토대로 전국의 피싱 수사관들이 머리를 맞대고 조직형 비대면 사기에 대응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다면 범죄 생태계들을 이어놓는 고리를 하나둘씩 끊어낼 가능성이 보일지도 모른다.
수사 생활만 26년째인 심 계장은 2019년 4월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국회 패스트트랙 사건'도 수사했던 잔뼈 굵은 베테랑이지만 오히려 눈에 잘 띄지 않는 피싱 범죄를 수사하는 지금이 가장 행복하고 만족스럽다고 했다.
그는 "내가 계좌를 하나 정지시키면 내 가족과 주변 지인이 조금 더 안전해질 수 있다"며 "소상공인들이 노쇼 사기를 당하지 않고, 은퇴한 분들이 투자 사기를 당하지 않는 세상이 돼야 안전한 세상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심 계장은 "휘발유처럼 날 태워줄 동인이 있어도 15년쯤 지나면 떨어지고 매너리즘에 빠지기 쉬운데 저는 이 업무를 만나면서 숨은 역할이 아니라 제일 앞에 튀어 나온 역할을 한다는 느낌이 든다"면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있다는 보람을 많은 후배들이 느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심무송 계장
△1975년 △경찰대학 졸업(15기) △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 수사팀장 △서울 영등포경찰서 지능수사과장 △서울경찰청 금융수사1계장 △서울경찰청 피싱범죄수사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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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사람도, 조직도 허리가 중요합니다. 위아래를 연결하며 중심을 잡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죠. 경정(警正)은 경찰의 11개 계급 중 중간인 6번째에 있습니다. 각 분야에서 경험이 쌓여 베테랑이라고 불리는 때이기도 합니다. <뉴스1>은 올해 창경 80주년을 맞은 대한민국 경찰의 중간 관리자이자 전문가인 이들의 활약과 애환을 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