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들판, 며칠 만에 황무지로…'돌발가뭄' 경보체계 '사각지대'
기존 가뭄 '장기간 발생'…최근엔 1달새 저수율 절반 준 곳도
- 황덕현 기후환경전문기자
(세종=뉴스1) 황덕현 기후환경전문기자 = 기후변화로 고온 현상이 심해지면서 수일~수주 내에 특정 지역에서 급격히 물이 마르는 '돌발가뭄' 현상이 국내 예·경보 체계 밖에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기존의 가뭄 대비 체계는 장기 강수 부족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단기간 수분 증발에 따른 돌발 상황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우려다.
30일 뉴스1 취재에 따르면 기후연구단체 넥스트는 30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연구보고서 '기후위기 시대, 돌발가뭄이라는 예고 없는 재난'을 발간한다. 넥스트는 대통령 직속 2050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에너지·산업 전환 분과 위원을 지낸 김승완 한국에너지공대 교수가 이끄는 비영리 법인이다.
보고서는 돌발가뭄(flash drought)을 '극한 고온 상황에서 수일간 비가 내리지 않아 수자원이 급격히 고갈되는 현상'으로 규정하고, 기존 가뭄 정의와 차별되는 독립적 대응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통상적인 가뭄은 수개월간 강수 부족이 지속되는 현상으로 간주해 왔다. 국가가뭄정보포털도 가뭄을 '진행 속도가 느리고 장기간에 걸쳐 발생하는 현상'으로 규정한다.
그러나 최근 국내에서는 장마철 이후인 8월에 가뭄 피해가 집중되고 있다. 지난해 7월 전국 평균 강수량은 평년 대비 130%였지만, 8월에는 강수량이 30% 수준으로 급감했고 증발량은 평년보다 136.9%까지 증가했다. 이에 따라 주요 저수지의 저수율이 한 달 사이 절반 가까이 줄어든 곳(강원 오봉 저수지)도 있었다.
돌발가뭄은 해외에서도 심각한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2012년 미국 중서부에서는 단 2주 만에 '심각한 가뭄' 단계가 발달해 약 40조원 규모의 농업 피해가 발생했다. 유엔 산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2021년 보고서에서 돌발가뭄의 존재를 명시하며 기후변화에 따른 가뭄 양상의 복합화를 경고한 바 있다.
국내에서는 돌발가뭄에 대한 명확한 정책적 정의가 없어 예·경보나 대응 체계 모두 사각지대라는 게 넥스트 주장이다. 실제 2018년 8월에는 상주시에만 생활·공업용수 가뭄 예·경보가 발령됐지만, 실제 피해는 전국 14개 시군에서 발생했다. 같은 시기 농업용수 가뭄 예·경보가 내려진 지역도 경상·전라·충북에 국한됐지만, 실제 피해는 강원·경기도까지 확산했다.
특히 현재 국가 가뭄 통계는 월 단위로 집계돼 돌발가뭄과 같은 단기 변화에 대한 공식적 기록이 부재한 상황이다. 주간 단위 예·경보는 비공식 보조자료로만 활용되고 있어 대응의 정확도와 신속성이 떨어진다.
넥스트 관계자는 "돌발가뭄은 장기 가뭄과는 다른 재난으로, 사흘~일주일 정도 비가 오지 않더라도 고온에 증발량이 많으면 충분히 발생할 수 있다"며 "예·경보 체계 내에서 돌발가뭄을 정의하고 통계와 감시 체계를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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