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夏 夏 夏…지리산 반야봉을 오르니 여름이 떠났다

[피아골~반야봉~뱀사골 종주기]

직전마을에서 표고막터까지 1km구간은 최고의 걷기 코스다. 단풍나무가 하늘을 가리고 자갈이 깔려있는 길은 지리산에서 흔치않다.ⓒ News1

(서울=뉴스1) 서영도 기자 = 이 마을이 어떻게 태어났는지

이 깊은 곳에 어떤 사람들이 흘러들어와

마을을 만들었는지

나는 굳이 알려고는 하지 않는다 -중략-

(이성부 시집 <지리산> ‘피아골 다랑이논’)

피아골은 삶과 죽음의 그림자가 아른거린 계곡이다. 한국전쟁 당시 이념의 소용돌이 속에서, 또 생사의 갈림길에서 피(彼)아(我)를 확실히 구분했던 아픈 상처를 갖고 있다. 전쟁 후 가난의 터널을 지나면서는 생존에 대한 욕구가 계곡의 물처럼 흐르던 곳이다. 생활에 대한 여유를 찾은 현대인에게는 문명과 자연의 경계를 확실히 보여주는 현장이다.

사실 피아골의 이름은 주민들의 삶에서 나왔다고 할 수 있다. 국립공원 안내판에는 피아골은 연곡사 수백 명의 승려가 식량이 부족했던 시절, 척박한 토양에도 잘 자라는 오곡(쌀 보리 조 콩 기장) 중의 하나인 피(기장)를 많이 심어 배고픔을 달랬다는 데서 피밭(稷田)골이라 부르던 것이 점차 변화되어 피아골로 이름이 굳었다고 쓰여 있다.

피아골의 백미는 지리10경의 2번째인 가을 단풍으로 알려져 있다. 허나 어디 단풍이 저절로 익던가. 뜨거운 태양을 견디고 몇 번의 태풍에도 제 몸을 잘 간수해야 가을 산의 주인노릇을 하지 않던가.

#직전마을~표고막터~삼홍소~피아골 대피소(4㎞)

피아골 입구부터 단풍나무들이 하늘을 가린다. 아직 숙성이 덜 돼 진초록인 잎새는 얼굴을 포개고 가을을 기다리고 있다. 자갈이 적당히 깔린 초록의 터널을 산보하듯 걷는다. 1㎞쯤 걸었을까? 벌써 표고막터다. 표고막터는 이름 그대로 표고버섯을 재배하던 곳이다.

지리산을 육산(肉山)이라 하지만 벌써 굵은 돌이 깔린 길이 계속 되니 골산(骨山)이라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갑자기 가팔라진 등산로 탓에 땀이 심하게 흐른다. 철제다리를 건너자마자 내려가기 편한 계곡이 보인다. 계곡물에 얼굴을 씻지만 물도 시원하지 않다. 내리쬐는 태양이 계곡까지 달군 것이다.

지리산에서 가장 물맛이 좋다는 임걸령 샘물. 가뭄에도 끊이지 않고 차서 지친 등반객에게 인기다. ⓒ News1

오른쪽에 계곡을 두고 야간 산행하듯 터벅터벅 걷다보니 소(沼)가 걸음을 멈추게 한다. 안내판을 보니 삼홍(三䉺)소다. 단풍에 붉게 타는 산홍(山䉺), 붉은 단풍이 물에 비쳐 물까지 붉게 보이는 수홍(水䉺), 산홍과 수홍으로 사람들의 얼굴이 붉게 보이는 인홍(人䉺)을 일컫는다고 쓰여 있다.

물속은 깊고 소리는 맑다.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천천히 움직인다. 너무 자주 쉬면 하산 때 급하다. 피아골 대피소까진 쉬지 않고 가야 해가 지기 전에 산행을 마칠 수 있다.

대피소는 샘이 있어 등산객에겐 쉼터다. 목을 축이고 잠시 쉬는데 벌에 이마를 쏘였다. 보통 벌이 아니다. 이마가 얼얼하고 붓기 시작한다. 지리산에서 봉침(蜂針)을 제대로 맞았다

#피아골 대피소~피아골 삼거리~임걸령~노루목~반야봉(4.7㎞)

피아골 삼거리까지는 깔딱고개의 연속이다. 등산로 양쪽으로 산죽(山竹)이 도열하고 간간이 원추리 등 지리산의 꽃들이 보이지만 힘든 발걸음에 고개를 돌릴 틈도 없다. 2㎞를 숨가쁘게 들어 올리자 피아골 삼거리다. 여기서 왼쪽으로 가면 대부분의 등산객이 종주를 시작하는 노고단이고 오른쪽으로 20여km를 계속 오르면 천왕봉이다. 예상 시간보다 더 걸려서 바로 임걸령으로 향한다. 10분을 못 가니 지리산에서 최고로 물맛이 좋다는 임걸령 샘이 나온다. 20년 전 종주 첫해가 생각난다. 어찌나 발이 무겁고 힘이 들던지 아래쪽에 약수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서도 그냥 직진만 하던 시절이 있었다. 지리산엔 물 받을 곳이 몇 곳 있다. 수량이 가장 풍부한 연하천, 바위틈 두 곳에서 나오는 세석평전 음양수, 대피소에서 한참 내려가야 받을 수 있는 벽소령과 장터목 샘물, 가물면 멈추는 선비샘 등이다. 임걸령 약수는 가뭄에도 줄지 않고 항상 차서 꿀맛이다.

지리산 제2봉인 반야봉. 천왕봉 종주길에서 비켜있어 종주를 여러번 한 등반객도 자칫 지나치기 쉽다. ⓒ News1

약수를 마시며 간단한 점심을 먹고 싶었으나 햇볕이 따사로워 그늘진 곳서 바나나와 삶은 달걀로 고픈 배를 달랜다. 이제 노루목까지 2㎞도 안 되는 거리. 노루목에선 바로 반야봉을 지를 수 있어 발걸음이 가볍다. 어느덧 반야봉 삼거리다. ‘지리산이 어디 만만한 곳이 있더냐’ 여기까지 오니 다시 다리는 후들거리고 땀은 안경알까지 적신다. 반야봉 등반을 마치고 내려와 쉬고 있는 등반객들이 배낭은 모두 여기다 놓고 가라 한다. 남의 배낭 짊어지고 갈 힘도 없을 테니 잃어버릴 염려도 없단다. 짐을 모두 벗어던지니 한결 낫다. 이제 800m만 오르면 목표점이다. 속도를 내지만 곧 지친다.

지리산 종주객에겐 주릉에서 벗어나 있는 반야봉은 '번뇌'의 대상이다. 대부분이 천왕봉을 목표로 하는데 가자니 왕복 2㎞ 거리라 시간이 더 걸리고 안 가자니 무엇인가를 빼먹은 듯 찜찜하다.

서서히 몸이 운해(雲海)에 잠기고 반야봉이 언제 나오는지 고대하며 내딛지만 가파른 절벽뿐이다. 철제계단을 오르니 다시 힘들어 쉴 수밖에 없다. 5분여 쉬며 기력을 보충해 바짝 오르니 드디어 지리산 제2봉인 반야봉이다. 1732m인 반야봉이 어떻게 지리산 제2봉이 되었을까. 1874m인 중봉도 있고 1806m인 제석봉도 있는데… 국립공원 관계자는 봉우리 선정은 단순히 해발고도 순이 아니라 산내에 있는 상징적 의미를 더해 정한다고 한다. 1507m인 노고단도 산신제를 지내는 등으로 제3봉 대우를 받는다. 구름바다에 잠긴 반야봉은 시계제로다. 시인 이원규는 ‘행여 반야봉 저녁노을을 품으려거든 여인의 둔부를 스치는 유장한 바람으로 오고’라고 했다. 반야봉은 여인의 엉덩이처럼 부드러운 쌍봉이라는데 나는 모르겠다. 살랑살랑 부는 바람이 볼을 스친다.

지리4경에 반야낙조(般若落照)가 꼽히지만 짙은 안개로 중천에 뜬 해도 보이지 않는다. 하산을 서두른다.

뱀사골 물은 맑고 깊다. 계곡 내내 이런 물들이 흐르고 크고 작은 소(沼)를 만든다ⓒ News1

#반야봉~화개재~뱀사골~반선마을(11.3㎞)

‘어, 벌써 삼도봉인데 왜 화개재를 그냥 지나쳤지. 화개재에서 뱀사골로 내려가야 하는데…’ 내려오는 중에 분명 화개재는 없었는데 ‘대략난감’ 이다. 국립공원관리공단에 전화를 했더니 ‘예약결제는 1번 변경취소는 2번…’만 나온다. 노고단 대피소에 당황한 목소리로 물었더니 친절하게 알려준다. 더 가야 화개재가 나온단다. 화개재는 장터목과 함께 지리산 능선의 옛 장터다. 경남에서 오는 소금과 해산물, 전북에서 나오는 삼베와 산나물 등을 지고 1360m의 화개재까지 올라왔을 옛 사람의 고된 삶을 생각한다. 화개재에 다다르니 반가운 이정표가 나온다. ‘반선마을 9.2㎞.’ 내려가는 길이라 쉽겠지 생각하면 오산이다. 굵은 돌길의 연속이다. 다시 550개의 나무계단이 이어진다. 산죽을 벗 삼아 철제계단을 몇 개 지나자 간장소(沼)가 반긴다. 간장소는 옛날 하동에서 보부상들이 화개재를 넘어오다가 이곳에 빠져 소금이 녹았다 하고 그 빛이 간장 빛과 같다 하여 이름을 얻었다고 안내판에 쓰여 있다. 손을 넣어보니 물이 차다. 남원은 지리산의 북쪽, 남쪽 구례 피아골 물과는 차이가 있다. 순간 ‘알탕’의 유혹이 스친다. 더위에 지친 몸을 달랠까? 몸에 찌든 땀으로 이 맑은 물을 오염시켜도 되나…

뱀사골은 소의 연속, 산수화의 파노라마다. 제승대, 병풍소, 병소, 뱀소, 탁용소… 산자수명(山紫水明) 별천지가 따로 없다. 시인 고정희(1948~1991)를 데려간 곳이 어딜까 억울하고 슬픈 사연을 떠올려 본다.

뱀사골은 화개재에서 남원시 반선리 집단시설지구까지 11km가 넘는 웅장한 계곡이다. 등반내내 아름다운 풍광을 보여준다. ⓒ News1

지리10경에 왜 뱀사골이 빠졌는지 알지 못하지만 나에게 하나를 더 넣으라면 사계청수(蛇谿淸水)라 부르고 11경에 넣고 싶다. 왼편으로 이어진 절경에 눈을 떼지 못하고 내려오니 뱀사골 탐방로 입구다. 여기서 오른쪽으로 700m쯤 가면 천년송(松)이 있는 와운(臥雲)마을이고 왼쪽으로 2.1㎞를 더 가면 오늘 일정의 종착지 반선(半仙)마을이다. 신선길이라고 불리는 나무데크에서 내려보는 풍광을 보며 일행들과 함께 걷는다. 신의 작품일까 세월의 퇴적일까, 감탄의 연속이다.

반선에 도착해 산행 중에 받은 재난문자를 다시 확인한다. 남부지방에 태풍이 온다고 한다.

백년만의 폭군, 이 여름이 떠나고 있는 것이다. 숙소에 짐을 푼다. 술병은 쌓이고 밤은 깊어간다.

syd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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