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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당아씨 꿰차고 가던 길인가…김다현이 지르던 노래 길인가

은둔의 마을 지리산 아래 하동 청학동, 지금은 관광 명소로 기지개
도인촌·김다현길·삼성궁·서당·해발 700m…일상 벗어난 별천지

청학서당은 청학동을 대표하는 서당이다. 매년 하동군에서 마을 아이들을 교육하기 위해 지원을 해준다. 1983년 정병호 원장(맨 왼쪽)이 김봉 곤 (현 신선마을선촌서당 훈장, 왼쪽 두번째) 등 학생을 가르치는 모습.

(서울=뉴스1) 서영도 편집에디터 = 박경리 소설 토지 속 윤씨부인은 동학군 장수 김개주에게 겁탈당해 낳은 구천을 절에 맡겨 키우다 평사리 자기 집인 최참판댁에 머슴으로 들인다. 얼마 지나 그 아들은 형수인 별당아씨와 함께 밤길을 떠난다. 구천은 ‘씨’ 다른 형 최치수와 마을 사람들의 눈을 피해 지리산으로 숨어든다. 엄청난 패륜을 저지른 그가 입산한 곳은 평사리에서 멀리 떨어지고 인적이 드문 청학동이 아니었을까? 평사리에서 가까운 의신마을은 사람의 눈에 띄기 쉽고 산청의 거림은 가녀린 여자를 데리고 가기엔 너무 먼 길이다.

소설의 배경이 되던 시기엔 청학동은 도인(道人)들이 세상과 단절한 채 ‘그들만의 세계’를 그리며 살던 곳이다. 청학동은 사실 지리적 공간보다는 상징적 의미로 불렸다. 속세와 거리를 둔 이상향. 그래서 청학동(靑鶴洞)이란 이름은 화개면 일대를, 또 서울 남산 북쪽 기슭을 일컫기도 한다. 세월의 더께가 쌓이면서 하동군 청암면 묵계리 청학동은 지금 천지개벽을 했다.

해발 850m에 터를 잡은 삼성궁은 우리민족의 건국이념인 홍익인간과 이화세계(理化世界) 를 실현하고자 고조선 시대 소도를 복원한 배달의 성전이다. 매년 10월 개천대제를 지내는데 한해 방문객이 15만 명을 넘을 정도로 관광 명소가 됐다.

1983년 한풀선사(본명 강민주)가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1500여 개의 솟대돌탑을 쌓아 올려 만든 청학선원 삼성궁(환인·환웅·단군을 모신 성소)은 한 해 15만 명 넘은 관광객이 방문할 정도로 붐빈다. 4만 평이 넘는 이 궁은 고조선시대 소도(천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성지)를 현대에 복원한 곳으로 마고성, 검달길, 소도 등을 만들어 놓은 ‘테마파크’다. 지금도 공사가 계속되고 있는데 매년 10월이면 단군왕검이 고조선을 개국한 날을 기념하기 위해 개천대제를 지낸다.

국악 트로트 요정으로 불린 김다현은 아버지 김봉곤이 살았던 청학동이 또 다른 고향이다. 큰아버지들과 고모가 이곳에서 생활하고 할아버지 묘가 근처에 있어서 가끔 들른다고 주민들은 말한다. 김다현 고향집은 찻집으로 변신해 분투 중이다. 하동군은 도인촌 입구 김봉곤 훈장의 본가부터 회남재 정상 팔각정까지 8㎞를 김다현길로 선포하고 청학동을 세상에 알리기에 바쁘다.

'청학동 국악소녀' 김다현을 기념하기 위해 하동군에서 선포한 김다현길이 시작되는 김봉곤 생가. 지금은 김다현의 큰아버지가 찻집을 운영하고 있다.

관광으로, 소리로, 외지에 알려진 청학동은 아직도 도(道)꾼의 후예, 서당의 마을이다. 청학동대표 서원인 청학서당은 하동군에서 지원을 받아서 마을 아이들을 교육한다. 정병호 청학서당 훈장은 “현재 15명 정도가 등록을 했고 10명 정도가 교육을 받고 있다” 고 밝혔다. △유교 사상을 바탕으로 사자소학(四字小學), 추구(推句), 천자문(千字文)을 통해 한자와 기본 문장을 가르친 뒤 △학어집(學語集), 명심보감(明心寶鑑), 소학(小學)으로 유교 생활 윤리를 알리고 △대학(大學), 논어(論語), 맹자(孟子), 중용(中庸)을 통해 사서(四書)를 공부하게 하며 △시경(詩經), 서경(書經), 역경(易經) 등 삼경을 배우게 해 유교 경전 전반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고 한다. 1년 교육과정이냐는 우문에 평생 해도 모자란다며 어이없어한다.

도인촌 청학서당에 들어섰더니 빛바랜 사진이 눈길을 끈다. 상투 틀고 갓 쓰고 도포를 입은 정병호 훈장과 3명의 학생이 마루에서 공부하는 1980년대 모습인데, 더벅머리를 한 총각이 김다현의 아버지 김봉곤이다. 40년 세월이 흘러 김봉곤도 훈장이 됐고 그 딸은 트로트 가수가 됐다.

10가구에 못 미치는 도인촌은 대부분 초가집(?)이다. 하동군에서 도인촌의 이미지를 살리려 플라스틱으로 모형 초가집을 만들어 주고 지붕 색이 바래면 코팅 처리를 해준다. 많진 않지만 도인촌엔 외지인도 들어와 살고 있다. 자기 나름의 수양이나 요양을 위해 들어온 것 같다고 마을 이장은 전한다.

한자와 문장, 유교생활의 윤리와 경전을 가르치는 청학서당 안쪽 모습 . 학생들이 쓴 한지(작은 사진)가 모두 80톤에 달한다고 한다.

청학동의 개인 서당은 세월호 사고와 코로나 사태 이후 외부에서 오는 체험학습이 줄어 거의 문을 닫고 있는 실정이다. 지금은 청림서당 1곳만 운영되고 있는데 예절, 효, 인성, 한자 교육 등을 하며 계절 따라 캠프를 열기도 한다.

청암면에서 파악한 청학마을 인구는 72세대 149명인데 마을에선 55세대 100명쯤이라고 추정한다. 주민등록만 옮겨 놓고 살지 않은 사람이 많다는 설명이다. 젊은 층이 꾸준히 들어와 인구는 줄지 않지만 인심은 늘지 않는 모양이다. 한 집 건너 찻집이고 식당이다. 관광객을 상대하니 우리가 기대하는 산골 마을의 모습이 아닐 수도 있다. 푸른 학의 기운처럼 고고하고 우아하게 살아가는 청학동 주민들의 모습을 그려본다.

#대중교통으로 청학동까지 가기는 쉽지 않았다. 산청 원지에서 덕산까지 시외버스를 타야 하는데 덕산에서 청학동까지 버스는 하루 2번만 간다. 원지에 내려 어떻게 시간을 맞출지 걱정했더니 펜션 주인께서 20㎞가 넘는 거리를 태우러 왔다. “여기는 하동이지만 원지가 훨씬 가깝고 편리한 생활권이라…” 원지로 오라고 한 이유를 설명해 준다. 하룻밤을 지낸 한옥 펜션은 해발 750m 높이에 있어 능선 사이로 별이 뜨고 능선 위로 뜨는 해돋이를 볼 수 있다고 한다. 이른 새벽 아침을 챙겨준 주인은 지리산을 품을 듯 넉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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