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보험사, 건전성 사수 위해 '영끌'…1분기 자본성증권 발행 15조 돌파
한화생명·신한라이프 자본확충 추진 중
7개 대형 보험사 1분기 자본성 증권 발행액 15조…전년比 59% 증가
- 박재찬 보험전문기자
(서울=뉴스1) 박재찬 보험전문기자 = 대형 보험사의 건전성 사수를 위한 자본성 증권에 대한 의존도가 커지고 있다. 신종자본증권, 후순위채 등 자본성 증권은 규제상 자본으로 인정받지만 실제로는 부채다. 이에 금융권에서는 IFRS17 도입으로 건전성 개선을 위해 자본성 증권 확대에 나서면서 보험사 자본의 '양'은 커졌지만, '질'은 나빠졌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30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한화생명은 지난 27일 열린 임시 이사회에서 최대 10억 달러 규모의 해외 신종자본증권 발행 안건을 의결했다. 정확한 발행일과 발행 조건은 결정되지 않았으며, 5년 후 조기 상환할 수 있는 콜옵션(조기상환권)을 부여할 예정이다. 한화생명은 다음달 수요 예측을 거쳐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할 예정이다.
한화생명은 지난 3월에도 6000억 원 규모의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한 바 있다. 한화생명 관계자는 "이번 신종자본증권 발행은 글로벌 금융시장 변동성 확대와 자본 규제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것"이라며 "조달 자금은 전액 킥스 비율 제고를 통한 자본건전성 강화에 사용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신한라이프도 자본확충에 나선다. 지난 27일 신한라이프는 3000억 원 규모의 후순위채 발행을 위해 수요 예측을 실시했고, 목표액 대비 4배 많은 1조 2140억 원의 매수 주문을 확보했다. 희망 금리는 연 3.3~3.9%로, 3.4% 수준의 금리에서 목표액을 채웠다. 신한라이프는 1조 원이 넘는 자금을 끌어모은 만큼, 후순위채 발행 규모도 5000억 원까지 증액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이번 자금 조달을 통해 오는 8월 만기가 도래하는 3000억 원 규모의 신종자본증권 콜옵션 행사에 대응할 것으로 예상된다.
보험사들의 자본확충은 수년째 이어지고 있다. 그 결과 올해 1분기 기준 삼성생명, 한화생명, 교보생명, 신한라이프, 삼성화재, DB손해보험, 메리츠화재, 현대해상, KB손해보험 등 9개 대형 생명·손해보험사의 후순위채, 신종자본증권 등 자본성증권 발행 규모는 15조3793억 원으로 전년 동기(9조 6478억 원) 대비 무려 59.4% 급증했다.
같은 기간 보험사별로는 한화생명이 4조 9115억 원으로 전년 동기 2조 6747억 원 대비 54.8% 증가했다. 또 현대해상은 3조 3447억 원으로 91.6%, 교보생명 2조 9148억 원으로 80.5%, 메리츠화재 1조 6660억 원으로 41.7%, KB손보 1조 2650억 원으로 90.2% 각각 증가했다. 신한라이프는 6000억 원으로 지난해와 같은 규모이고, 삼성생명과 삼성화재는 자본성 증권을 발행하지 않았다.
보험사의 신종자본증권 및 후순위채 발행은 자본건전성 개선을 위한 것이다. 보험사의 자본건전성은 지급여력(K-ICS, 킥스) 비율을 활용해 평가하는데, 킥스 비율은 가용자본을 요구자본으로 나눈 비율이다.
가용자본인 지급여력기준금액은 손실흡수능력에 따라 기본자본과 보완자본으로 구분된다. 기본자본은 자본금, 자본잉여금, 이익잉여금, 기타포괄손익(OCI) 등으로 구성돼 있으며 위기 발생 시 손실을 확실히 흡수할 수 있는 근원적 자본이다. 보안자본에는 후순위채, 신종자본증권 등 자본성 증권이며, 규제상 자본으로 인정받지만 근본적으로는 부채이다. 보험사의 재무제표상 후순위채는 부채에 해당하고, 신종자본증권은 자본에 해당한다.
자본성 증권은 유상증자처럼 회사 지분을 희석시키지 않고 빠르게 자본을 확충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손실 발생 시 충분한 흡수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본으로서의 역할에는 한계가 있다. 문제는 보험사 건전성의 자본성 증권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는 점이다.
지난 1분기 기준 자본성 증권 의존도가 가장 높은 회사는 현대해상이다. 현대해상의 지급여력기준금액 중 자본성 증권의 비중의 비중은 25.6%로 9개 대형 손보사 중 가장 높다. 뒤를 이어 한화생명 23%, 교보생명 20.8%, 메리츠화재 12.6%, KB손보 10.9%, DB손보 3.3% 순이다. 다만 올해 하반기 중 한화생명, 신한라이프 등이 신종자본증권 발행을 계획하고 있는 만큼 자본성 증권 의존도는 더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한화생명은 약 1조3650억 원 규모의 자본확충에 나설 예정인 만큼 자본성 자본 의존도는 더 높아질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대형 보험사의 자본성 증권 발행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며 "다만 자본성 증권을 발행할 수 있는 상황이 되는 대형사는 그나마 다행이고, 자본성 증권 발행도 어려운 중소형 보험사들의 건전성 관리 고민은 더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금융당국은 보험사의 자본확충 부담을 낮추기 위해 현행 150% 이상으로 권고하고 있는 킥스 비율 규제를 130%로 낮출 예정이다. 금융당국의 보험사 자본비율 가이드라인이 낮아지는 것은 20년 만에 처음이다. 이로써 킥스 비율에 대한 보험사의 고민은 덜게 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보험사들은 새로운 걱정거리가 생겼다. 금융당국이 현행 킥스 비율과 함께 기본자본 킥스 비율 규제 도입을 추진 중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기본자본 킥스 비율은 의무 규제기준이 아닌 경영실태평가(RAAS) 하위 항목으로만 활용했다.
금융당국은 보험사들이 자본성 증권 발행으로 '자본의 양'은 커졌지만, '자본의 질'은 나빠졌다고 판단하고, 기본자본 킥스 비율 도입을 통해 '자본의 질' 개선에 나서겠다는 방침이다. 아직 기본자본 규제에 대한 가이드라인은 나오지 않았지만 보험사 입장에서는 앞으로는 자본의 양뿐만 아니라 자본의 질 관리에도 나서야 하는 상황이다. 실제 보험사가 기본자본을 늘리기 위해서는 유상증자를 통한 자본금 확대 또는 잉여금 쌓아야 한다.
업계 일각에서는 금융당국의 규제 변동성이 너무 크다는 지적도 나온다. 보험사들은 IFRS17 도입 이전부터 킥스 비율 규제에 맞는 건전성을 유지하기 위해 자본확충에 나섰다. 하지만 IFRS17 도입 이후 여러 차례 규제가 강화되면서 오히려 건전성은 악화됐다. 보험사들은 지난 몇년간 수십조 원의 자본성 증권을 발행했지만, 여전히 자본확충 압박에 시달리고 있는 셈이다. 특히 기본자본 킥스 비율 규제는 중소형 보험사의 압박이 더 클 것으로 보인다.
이세훈 금융감독원 수석부원장은 "보험사가 지속적으로 고객을 관리하면서 영업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자본을 갖추는 게 요구사항이기 때문에 유상증자 등 자본확충이 적기에 이뤄질 수 있도록 지도하겠다"며 "보험산업 내 M&A나 합병 같은 구조조정을 통해 경쟁력이 떨어지는 보험사들이 차별화를 이뤄내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어 "부채평가 할인율 현실화, 시장금리 하락, 환율·주가 변동성 확대 등에 따라 자본적정성이 취약해질 우려가 있는 만큼 보험개혁회의 등을 통해 발표된 개선과제들을 조속히 제도화하고, 시장에 안착시켜 보험회사의 전반적인 리스크 관리 역량 제고를 추진할 계획이다"라며 "취약 보험사에 대해서는 자본확충, ALM 관리 강화, 리스크 중심의 의사결정체계 확립 등을 지속 지도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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