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어나는 병원비 vs 생사 기로에 선 반려견…포기 대신 만든 기적
로얄동물메디컬센터, 경추 디스크 수술 증례
호흡곤란 후유증…인공호흡기 낀 20일의 사투
- 한송아 기자
(서울=뉴스1) 한송아 기자 = 수술 후 호흡 곤란으로 인공호흡기에 의존하게 된 반려견. '언제까지 이 장치를 달고 있어야 할까' 기약 없는 기다림 속에, 반려견의 목숨은 오직 의료진의 처치와 반려견의 생존 의지에 달려 있었다.
매일 수십만 원씩 쌓여가는 병원비에 보호자들의 어깨는 점점 무거워졌다. 그러나 인공호흡기를 섣불리 제거하면 반려견은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심지어 인공호흡기도 강아지가 관을 씹을 수 있어 의식이 없도록 진정을 계속 유지해야 했다. 온 가족과 의료진이 24시간 내내 심박수와 호흡 상태를 실시간으로 관찰해야 하는 등 극도의 집중과 인력이 요구됐다.
하지만 이 절망적인 상황을 정면으로 돌파한 반려견 해피와 가족, 그리고 누구보다도 보호자들의 포기를 막아낸 한 수의사가 있었다.
23일 해피의 보호자 조유미 씨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13살 노견 해피는 갑자기 걷지 못하는 증상을 보였다. 가족들은 믿을 수 없는 마음으로 서울 중랑구 로얄동물메디컬센터로 향했다.
엑스레이와 MRI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해피는 사지 마비와 심부 통각 소실을 동반한 경추 4~5번 디스크 4단계 판정을 받았다. 경추디스크 5단계에 이르면 사망에 이를 수 있는 상태였다.
유미 씨는 "해피는 제가 13살이던 크리스마스 때 와 학창 시절과 청춘을 함께한 가족"이라며 "절대 해피를 포기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해피의 치료를 맡은 정인성 대표 원장은 보호자와 긴 논의 끝에 곧바로 응급 수술을 결정했다. 그는 "살려야 한다"는 단 하나의 목표를 안고 수술에 임했다.
다행히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해피는 통각이 돌아오고 꼬리를 흔들며 밥도 스스로 먹는 등 빠르게 회복세를 보였다. 그러나 안도의 숨은 너무 일렀다.
입원 3일째 해피의 목소리가 쉰 소리로 바뀌더니 갑자기 숨을 쉬지 못하기 시작했다.
정인성 원장은 "경추 디스크 4단계에서 수술 시, 약 5% 확률로 목소리 변성, 연하곤란, 호흡곤란 등 후유증이 발생할 수 있다"며 "해피는 예외적으로 그 후유증이 심각하게 나타난 경우였다"고 설명했다.
해피는 인공호흡기 의존이 불가피했고, 동시에 폐렴, 췌장염, 빈혈 등 기저질환 치료도 병행해야 했다
그렇게 자발적 호흡을 회복하기 위한 고된 싸움이 시작됐다. 로얄동물메디컬센터에 마련된 보호자 동반 입원 공간에서, 가족들은 밤낮 없이 교대로 쪽잠을 자며 해피 곁을 지켰다.
그러던 어느 날, 보호자가 잠시 잠든 사이 해피가 호흡기 관을 씹어 심정지가 발생하는 위급 상황이 벌어졌다. 다행히 병원에 상주하며 상태를 모니터링하던 정인성 원장이 즉각 발견해 심폐소생술로 해피는 다시 숨을 되찾을 수 있었다.
유미 씨는 "그 순간을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하다"며 "그때 정 원장님이 없었더라면 해피는 지금 곁에 없을 것"이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하지만 시련은 끝나지 않았다. 1주일 후 위닝(자가호흡 훈련)을 시도했지만 다시 호흡이 불안정해져 재삽관이 필요했다. 반복되는 위기와 높아지는 치료비 부담 속에 보호자들은 '정말 이게 해피를 위한 길일까' 하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하지만 정 원장은 "며칠만 더, 해피는 해낼 수 있다"고 조심스럽게 설득했다. 정 원장의 이 한마디가 희망이 되어 유미 씨는 끝내 포기를 선택하지 않았다. 부모님의 만류도 있었지만, 정 원장과의 긴밀한 논의 끝에 가족들은 치료를 이어가기로 결정했다.
유미 씨는 "해피는 제 목숨과 같은 반려견"이라며 "전 재산을 다 써도 아깝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리고 기적은, 마침내 찾아왔다.
인공호흡기 장착 2주 차, 해피는 서서히 자발호흡을 회복했다. 산소포화도가 점차 안정되기 시작했고, 드디어 인공호흡기를 떼는 데 성공했다.
입원 20일 차, 해피는 정상적인 호흡과 식욕을 되찾고 인지 기능도 회복한 채 퇴원할 수 있었다. 이후에도 재활 운동과 약물치료를 병행하며 건강을 되찾았고, 현재는 가족들과 산책을 즐기며 평온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유미 씨는 "병원에 20일간 살다시피 하면서 의료진이 해피를 대하는 태도에 크게 감동했다"며 "특히 퇴원 후에도 지속 상태를 체크해주시고 산소방 등으로 도움 주신 정인성 원장의 헌신은 그저 감사할 뿐이다"고 말했다.
이어 "정 원장님의 진심 어린 진료, 그리고 평소 봉사활동까지 하는 모습을 보며 저 역시 좋은 영향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됐다"며 "해피와 함께하는 하루하루가 선물처럼 느껴진다"고 덧붙였다.
정 원장은 "해피의 회복 여정은 어떤 드라마보다도 뜨거운 감동이었다"며 "반려견의 생명 의지, 보호자의 사랑, 의료진의 노력이 하나로 모이면 기적은 현실이 될 수 있다는 걸 해피가 보여줬다"고 말했다.
13년 전 크리스마스에 유미 씨 가족에게 온 해피는 2024년 크리스마스도 가족 곁에서 함께 했다. 지금 해피는 예전처럼 스스로 밥을 먹고 빨래통에 있는 양말을 물고 가져와서 장난도 친다.
유미 씨 가족은 기념일마다 정 원장에게 해피의 소식과 감사 인사를 전한다. 그리고 매일 해피에게 말한다.
"해피야 넌 정말 대단한 강아지야, 너무 대견하고 고마워, 앞으로도 쭉 건강 해줘!" [해피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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